2011년 03월 01일
만추

만추. 늦은 가을. 달이 차듯, 가을도 차오른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두 사람은 만났다.
영화는 애나로부터 시작해서 애나로 끝을 맺는다.
첫 장면에서, 절규하며 극도로 불안하던 애나의 표정은,
마지막 크레딧 장면에서는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그녀를 바꾼 것일까.
그 변화의 과정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영화가 흐르는 총 9년간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
72시간동안 만났던 훈.
애나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였다.
어머니. 그녀가 의지했던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 어머니의 장례는 뒷전이고 사후재산을 놓고 갈등하며, 그녀에게 그저 재산분할 동의서에 서명만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왕징. 그가 대신 감옥행을 택할 정도로 목숨바쳐 사랑한 그 역시도... 그녀를 버리고 이미 다른 여자와 새로운 삶을 꾸렸다.
그녀가 감옥에서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이 모두 다 무너져버렸다.
순간, 그녀의 앞에 다시 거짓말처럼 훈이 나타났다.
훈은 그녀의 내면을 어루만져주었다.
애나가 갑자기, 훈이 알아듣지 못할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를 내뱉는 장면에서도,
훈은 그저 '하오'와 '화이'를 번갈아가면서 답할 뿐이었다.
그 때 애나의 표정은 이전의 불안한 표정과는 달랐다.
그녀의 생에서 그토록,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준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감정은 언어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미세한 눈짓, 표정, 기다림...
그리고 애나가 마음을 열었을 때.
둘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었고,
카페를 나선 애나의 양 손에는 커피가 두 잔 들려있었다.
한 잔이 아닌 두 잔.
곧, 그녀의 마음 한 곳에 누군가가 자리할 곳이 생겼다는 증거.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비극이 잉태된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순간, 그는 체포되어 사라졌다.
처절하리만큼 안타까운 애나의 모습...
훈은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기다릴만한 그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
언젠가 다시 훈을 만나면, 말없이 안아줄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은, 생의 의욕으로 변화될 것이다.
# by | 2011/03/01 18:04 | 영화 | 트랙백



